김 옥 렬(독립큐레이터)
추종완의 작업은 인간의 몸으로부터 출발한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내 몸은 나의 전부이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영혼이란 몸의 어떤 면을 말해주는 것에 불과한 것”임을 말한다. 몸은 늘 철학의 담론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이제 몸은 소외를 벗어나 중심에 놓임으로서 소통의 주체로 다시 태어났다. 이렇게 태어난 몸은 현대미술의 실험실이자 전쟁터가 되고 있다. 때론 인간적 모습이나 정신적 이상을 담아 내는 그릇으로 혹은 인간과 기계의 새로운 잡종에 대한 묘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이 시대의 실험실이 되고 있다. 추종완이 생각하는 몸에 대한 단상은 몸의 긍정을 강조하기 위해 몸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진실한 인간성 회복을 역설한다. 이는 그가 몸과 정신의 관계를 동일한 선상에 두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의 존엄성과 진실성의 회복은 곧 몸의 회복이기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현대인의 가식과 위선의 이중성을 비판하기 위해 몸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검은 비닐을 뒤집어 쓴 혹은 일회용처럼 버려지는 얼굴 군상에서 최근작인 <脫>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그의 오브제는 버려져야 할 몸이 아닌, 채워져야 할 몸의 역설을 담는다. 이러한 역설은 몸의 양면성에서 기인한다. 몸은 삶의 결과인 동시에 원인이기에 더욱 그렇다. 머리가 없는(머리뿐 아니라, 몸도 비어있는) 몸의 군상에서 허상으로 가득한 인간의 모습을 해체하는 것은 그의 존재론적 시각이 깔려있음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실존적 삶의 가능성은 몸을 주체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추종완이 드러내는 몸의 반성에서는 인간다운 몸을 향한 인간성의 회복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