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종완의 《탈(脫)》연작 시리즈

김 영 동(미술평론가)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충격적인 인체의 형상들은 관객들의 기억에 깊은 인상을 남겨 놓는다. 한번 보면 지우기 힘들만큼 자극적인 이미지들이다. 그 강렬한 인상은 필치나 색채에 의해서가 아니라 형상의 의외로 파괴적인 형태에서 비롯된다. 인체는 다른 사물의 형태들에서보다도 특히 왜곡되거나 훼손되면 우리의 정서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어있다. 신체 이미지에 새겨진 가혹한 폭력과 학대의 흔적들은 인간의 끔직한 잔학성에 전율을 느끼게 하거나 극심한 내적 고통의 아픔을 환기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현대미술에 올수록 그러한 표현이 증가 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렇게 작가들은 신체의 이미지를 통해 매우 실존적이고 심리적인 질문들을 다룰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의 취급에로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추종완의 경우 주로 앉아 있거나 웅크린 자세의 남성 누드의 모습을 상반신은 표현되지 않고 심하게 주름진 은폐물로 가려진체로 그려낸다. 종이나 섬유처럼 얇은 겉껍질 또는 덧씌운 보로 대체된 상반신은 마구 짓이겨 구겨진 천으로 덮은 것 같기도 하면서 한편 사실적인 나머지 사지묘사와 연결되어 있는 불합리한 연장 상태를 취하고 있다. 사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막 파열을 겪고 난 뒤 잔해의 모습이라고 할지. 이와 같은 인물상들이 때로는 복수로 군집을 이루기도 하고 실제의 거푸집처럼 제작되어 설치되기도 한다. 다양한 동작의 형상들이 실루엣처럼 평면적인 이미지로 바뀌어 공중에 부유하는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기도 하고 입체적인 조형물로 제작한 오브제들과 연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변주들로 이어져간다. 짓이겨지듯 구겨진 인체의 상부 묘사는 광포하게 학대당한 참상의 느낌마저 전달한다. 그러나 그 파괴적인 표현에도 불구하고 인체의 살(肉)을 직접적으로 훼손시킨 느낌이 아니라 마치 탈피 후의 껍질이거나 조각의 부스러기와 같은 무기질의 느낌이어서 엽기적인 잔인함은 오히려 덜하다. 그것은 사지의 사실적인 묘사와 상부의 심하게 구겨진 주름 형상의 은폐물 부분의 극단적이 대조가 그의 그림에서 인체의 유기적인 전체상을 상상하는데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채색의 흑백 톤도 재현적인 사실감을 어느 정도 가로막고 비현실적 환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탓도 있다. 그래서 신체적 감각에서 일어나는 직접적인 전율을 느끼기보다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떨어져서 목격하게 하는 면이 있다. 일종의 반성을 위한 거리감을 내어준다고 할까. 작가는 우리의 혹은 자신의 인격을 덮고 있는 가식적인 외피를 의식한 듯하다. 그의 인체 형상은 그래서 외부로부터 감각을 지각하는 몸이라기보다는 내부의 의식을 담고 있는 용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그것은 하나의 페르소나(가면, 외부적 태도), 혹은 융의 용어로 말하면 팽창된 정신의 상징인 것이다. 그 외각 속에는 또 다른 자아, 의식의 숨겨진 측면인 그림자(Shadow)가 들어있다. 그 양자간에 원만한 타협이 이루어지지 못한 인격은 결국 격심한 정체감의 혼란이나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 작가는 자신이 겪는 내면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마침내 파열되고야 말 것 같은 가식과 허위의식의 군상들이 괴기스럽고 공포스런 거대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바로 그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 삶의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잔인함이나 공포의 인상보다는 격렬한 내면의 갈등, 신랄한 자기비판의 감정을 느낀다. 어떻게 그 단단한 외각을 벗어던지는 찬란한 탈(脫)이 가능한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