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종완_고독한 존재

김 용 민(독립큐레이터)

고독한 존재는 어둠 속에서 난다. 팔과 다리만 남은 채 모든 것이 검은 날개가 되어 흩어지려 한다. 실체를 버리고 의미를 놓았다. 세상의 끝에 선 한 남자가 목격되고 바로 그 쓰러진 몸에 전율을 느꼈다. 감정은 흑암에 사로잡혀 머리를 날려 보냈고 지시할 곳 없이 그 자리에 털썩 살덩어리의 무거움을 놓았다. 입이 없어 말을 하지 못한다. 눈이 없어 볼 수가 없다. 머리가 없어 사고할 수도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누가 나며 누가 남인지 바람 없는 자리에 훨훨 나는 살에 붙어 아우성 거린다. 그래도 그 남자는 갈색 눈을 가진 소박한 사람이었다. 삶과 자신의 작업에 솔직하고 진정한 사람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며 몰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팔에 핏줄이 설 때, 열 마디의 말보다 더 강한 절규가 눈앞에 다가온다. 정녕 그것이 숙명이라 할지라도 작업의 무거움에서 가벼움을 찾아낼 것이다. 흑(black) 속에 내러티브가 둥그러져 있다. 그것을 보기에 구토가 나올 정도로 치밀하며 유연하였다.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형태와 명암이 내러티브를 요구하였다. 매우 신화적이다. 인간이 싸워야할 대상인 ‘인간이 아님’에 또한 ‘인간일 수밖에 없음’에 전율을 느끼며 비극으로 치닫는다. 오로지 여기 세계는 색을 잃어버린 배경이 방 안으로 몰리고 인체가 정물이 되어 난도질 그리고 살아났다. 흑연이 캔버스에서 부서진다. 그리고 압착되어 누적된다. 흑연 속에서 반사되는 빛이 시야에서 숨는다. 어느새 명암은 무게를 갖는 질료가 되어 있었고, 불쑥 튀어 나온 손과 발은 그것(질료로서 명암)이 표현하고자 하는 몸이 되어 있었다. 구겨진 신문지 더미서 남성과 여성이 응어리져 숨어 있다. 색은 여성의 것이요, 명암은 남성의 것이다. 그럼에도 형태는 모두가 남성으로 공유되고 있다. 이제 껍질을 벋고 보다 견고하게 정리되었다. 말을 타고 있는 남성, 말고삐를 끄는 한 아이, 그 사이를 잇는 붉게 젖은 끈. 양복을 입은 남성의 모습에서 붉게 젖은 넥타이가 등장한다. 또한 하이힐을 신고 망사 스타킹을 입은 남성의 형태가 붉게 젖은 치마를 입고 있다. 어쩌면 여성은 희망을 상징할 수도, 메이는 사슬이 될 수도 있다. 복제되고 증식된 자기 혼자만의 관계가 아니다. 사회에서 파생된 부산물들과 부딪치며 자신을 지켜야 한다. 진화된 어둠의 조각난 구김들이 생명을 얻어 옷이 되었다.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손지갑과 같은 제품이 되었다. 시대는 더욱 복잡해졌지만 자신의 모습은 하나로 고착되었다. 그래도 옷을 입기 위하여 몸통이 살아나고 있지 않은가. 심장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 가장 먼 곳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한다. 지금껏 고민해 온 것이 편집되고 콜라주가 되어 가장 적절한 형태를 갖추었다. 당연히 그림자는 없다. 손끝과 발끝, 저 먼 곳으로부터 머리로 엄습하여 머릿속으로 들어가 무대 위로 오른다는 것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어디서 사는지 모른 어린아이의 손에 이끌려 고개를 돌리는 말의 시선이 어색함 가운데 긴장되고 있다. 포탄에 맞아 얼굴이 터져버린 우리의 주인공이 저기 말 위에서 유일하게 우리를 보고 있다.